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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덕붕(髙德鵬)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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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 ∼ 1626,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1552년(명종 7)에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종송리 여곡에서 태어나 1626년(인조 4)에 졸하였다.

그는 1592년(선조 25) 41세에 임진왜란을 당하자 창의격문(倡義檄文)을 작성하여 동지를규합했고 의병장 고경명(髙敬命)의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 때는 고경명이 순절한 뒤였으므로 채홍국(蔡弘國) 등 92명의 동지와 삽혈동맹하고 그 맹주가 되어 의병을 거느리고 왜적과 여러 번 싸워 공을 세웠다. 또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의병의 주장이 되어 왜적과 여러 차례 싸웠으며 부안의 호벌치(胡伐峙)에서 싸울 때는큰 전과를 올리고 그곳에서 순절했다.

1893년(고종 30) 나라에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증직하였고 유림의 추천으로 모충사(慕忠祠)에 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