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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문명훈처효열고씨지려 (孝烈髙氏之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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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문명훈처효열고씨지려 (孝烈髙氏之閭 )
위치 ; 애월읍 납읍리
시대 ; 조선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유형 ; 열녀비

이 비석은 문명훈(文明訓)의 처 고씨의 열녀비이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80cm, 폭 44cm, 두께 18cm이며, 잘 다듬은 돌로 된 비각 안에 있다.

비석에는 전면에〔學生文明訓妻孝烈髙氏之閭〕 후면에 〔烏 休哉夫孝烈眞箇出天之性而常人之所不得行者也惟髙氏耽羅王子后諱宗彦女適于文明訓家素淸貧婦功斯勤養舅姑供旨常具臨喪祭盡力專致而且夫子病革禱天願代竟以斷指灌血于口則遂使將殞之命便成更生終得偕老而鄕黨己 孝烈焉 高宗甲申春面薦與鄕校儒狀一時倂報于營府則特賜褒善之完文已久矣於斯追慕 敍顚末以俟天鑑之日云今〕

우측면에는 〔上之七十八 ○○謹竪〕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의 옆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서 있다.

〔오호라, 효열이란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성품이라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지 못하는 일이다.

고씨는 탐라왕자 후예인 고종언의 딸로서 문명훈에게 시집왔는데 본래 집이 가난하였으므로 부지런히 일하고 청빈한 부덕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으며 장례와 제사도 극진히 하였도다.

남편의 병이 위돗하자 천지신명께 빌며 대신 죽기를 원하였으나 마침내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입에 수혈하니 죽었던 목숨이 다시 살아나 늙도록 같이 살았다.

고종갑신년(1884) 봄에 면과 마을 유림들이 일시에 영부에 보고하니 특별히 착함을 포양하여 표창을 내렸다. 이에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사실을 간추려 전말을 적어 후일에 귀감으로 삼고자 함이다.〕(현지의 안내판)

-자료출처 : 고영철의역사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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