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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황(髙斗愰) 조선 후기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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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인조 6)∼1713년(숙종 39). 조선 후기 무신. 자는 회중(澮仲)이고, 호는 직곡(直谷)이다.

증조부는 제원군(濟原君) 고사렴(髙士濂)이고, 생부는 고홍선(髙弘選)이며, 양부는 삼종숙 고홍건(髙弘建)이다.옥구(沃溝)에서 살고 있던 고두황의 생부 고부선(髙傅選)은 삼종숙의 뒤를 잇기 위해 양자로 보낸 고두황이 21세 때에 광산김씨(光山金氏)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매우 예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고부선은 “의리로는 삼종숙 며느리이지만, 정리로는 내 며느리”라고 하면서 노비와 땅을 광산김씨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내용이 제주고씨(濟州髙氏) 집안에 내려오는〈분재기(分財記)〉에 실려 있다. 〈분재기〉에는 생부를 고부선이라고 하였는데, 고홍선의 자(字)가 부선인 것으로 생각된다.

고두황(髙斗愰)은 알성무과(謁聖武科)에 올라 관직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선대의 공훈으로 영해군(瀛海君)에 봉해졌다. 노년에는 고향 벗들과 봉산구로회(蓬山九老會)를 조직하였다.

아들로는 1653년(효종 4) 생으로 1678년(숙종 4) 무오(戊午)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05위로 무과에 합격한 고수일(髙守一)이 있다. 딸은 광산김씨 김주만(金胄萬)의 아들 김한(金澣)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 양득중(梁得中)의 시문집 《덕촌집(德村集)》 〈청헌김공행장(聽軒金公行狀)〉에서 확인된다. 그의 딸과 김한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조카 김여웅(金汝雄)으로 뒤를 이었다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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