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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환(髙龍煥)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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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미상. 함남 북청(北靑) 출신.

일찍이 중국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유학하던 중, 1919년 1월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군(大韓光復軍)이 조직되자 단원으로 가입하여 국내로 밀파되었다. 중국 봉천(奉天)을 거쳐 국내로 잠입한 그는 평양・서울・북청 등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군자금 모집과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으며, 2월 장백현(長白縣) 총대(總代) 김찬(金燦) 등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북간도(北間島)의 연길현(延吉縣)으로 출발・도착하였다. 동년 3월 연길현 국자가(局子街)에서 한국독립기성회(韓國獨立期成會)가 결성되자, 의사부원(議事部員)에 선임되어 국권회복운동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북청청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그는 1920년12월 서울에서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 창립총회가 개최되자, 북청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총회에서 의사장(議事長)으로 선임된 그는 계몽과 선전에 초점을 두어 활동하면서 청년단체의 조직적・사상적 결합을 꾀하였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 발행의 독립공채(獨立公債)를 매각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민족의식 고취 문건을 작성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1년 2월 북청경찰서에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2년 4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상임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민족운동을 부흥시키기 위한 방침으로 청년회에서 주도한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23년 조선청년회연합회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월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회(朝鮮物産奬勵會 發起準備會) 준비위원으로 선출된 것을 비롯하여 동월 제1차 이사회에서는 선전부 상임이사, 2월에는 서울 서부지역 회원모집책으로 선임되어 물산장려 후원 발기인과 회원 모집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동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 발기총회에 참석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지방의 청년단체들과 연계하여 강연회와 시위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민족자본의 구축과 민족교육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이와 동시에 동년 5월에는 백관수(白寬洙)등과 함께 조선물산장려회의 소비조합 설립준비위원으로 피선(被選)되어 각국의 소비조합 실태조사와 조직방법을 강구하는 등 민족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상세설명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피선(被選) : 선거에 뽑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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